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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사회과 교육의 탄생과 발달 과정(원본)

1. 사회과 성립의 전야 -10인위원회와 7인 위원회의 보고서

(1) 사회과 교육이 필요했던 미국의 상황

① 19세기 말 20세기 초 당시 미국은 남북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 재건을 이룩한 시기로서, 유럽을 중심으로 많은 이민자가 몰려왔고, 산업화, 도시화의 진전과 함께 노동문제, 인종차별 등의 사회문를 안고 있던 시기였다. 따라서 급속히 산업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서부의 편입으로 통일된 미국의 발전을 위하여 애국심을 가진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이 요청되었다.

② 사회과가 공식 교과로 탄생하기 이전의 학교 시민교육은 역사를 중심으로 하여 지리, 공민, 정치경제, 도덕철학 및 종교교육 관련 과목들이 혼재한 형태였다. 단연 역사 과목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리스·로마 신화, 미국 혁명의 영웅들, 신대륙의 발견 등에 관한 내용이었고, 애국심과 도덕성 함양이 주요 목표였다. 체계적이지 않은 역사적 정보와 지식으로 교재가 구성되고, 주입식 암기 교육이 일반적인 수업 방법이었다.

(2) 1892년 전미교육협회(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 : NEA) 10인 위원회

따라서 이 시기의 시민 교육에 대한 요청은 단편적 역사지식 전달 위주의 전통적 교육에 대한 개혁 요구로 나타났다. 이러한 개혁요구에 부응하여 1892년 전미교육협회(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 : NEA)는 하버드대 총장 엘리엇을 중심으로 ‘10인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10인 위원회'에서는 체계적인 8년간의 역사 교육과정을 제시하고, 수업방법도 일방적 강의와 지나친 교과서 의존을 탈피하여 토의 • 토론을 실시하고, 시, 소설, 전기 등 문학작품을 함께 활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NEA의 ‘10인 위원회'가 제출한 보고서는 고등학교에 역사교과가 정착하는 데는 기여하였으나, 학교 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하지는 못한 한계를 가졌다.

미국교육협회 10인 위원회에서는 라틴어, 그리스어, 고대사 등과 함께 직업 생활이나 시민 교육을 포괄하는 교육과정을 제시하였다.

‘전미교육협회(NEA)의 10인 위원회’는 고문(古文), 이과(理科), 현대어, 영어의 기본 교육과정으로 정신적 훈련을 도모하고자 하였으며, 사회 인식 교과로서 역사교육을 중시하였다.

(3) 1896년 미국역사학회(American Historical Association : AHA) 7인 위원회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1896년 미국역사학회(American Historical Association : AHA)에서는 ‘7인 위원회’를 조직하였고, 이들은 전통적인 지식전달 중심의 역사교육을 벗어나 학생들에게 역사적 이해력, 역사적 사고력을 길러주는 과학적인 역사교육을 강조했다. 이 위원회는 더욱 구체적인 4단계 학교 교육 프로그램으로 ①고대사, ② 중세 및 근대 유럽사, ③ 영국사, ④ 미국사 및 시민정부로 구성된 4년간의 역사교육 프로그램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고대사에 대한 지나친 강조와 시민정부에 대한 관심의 부족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역사학회(AHA)의 7인 위원회에서는 고대사, 중세 및 근대사, 영국사, 미국사와 민주 정부(civil government)로 구성된 역사 교육을 주장하였다.

(4) 결국

10인 위원회와 7인 위원회에서 제안한 보고서들은 전통적인 역사중심의 교육과정에 치중함으로써 NEA가 추구한 시민교육의 이상에 미치지 못했고, 학교 현장에서는 여전히 지식전달 중심의 교육과정이 강조되었다. 즉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학생들의 필요, 흥미와 연계된 시민교육을 요구하는 개혁적 필요에 부응하지 못 했다. 그리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바람직한 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새로운 교과를 모색하게 되었다.

2. 최초의 사회과교육과정 모형 - 1916년 보고서

(1) 전미교육협회(NEA)는 중등교육개혁위원회(The Commission on the Reorganization of Secondary Education:CRSE)를 만들어 개혁을 모색하였다. CRSE의 활동과정에서 시민교육을 주된 목표로 하는 새로운 교과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등장한 것이 1912년 NEA ‘사회과위원회(The Committee on Social Studies)’의 설립이다. NEA 사회과 위원회는 1914년 ‘A Preliminary Statement’, 1915년 ‘The Teaching of Community Civics’ 그리고 1916년의 최종 보고서 ‘The Social Studies in Secondary Education’ 등의 보고서를 통하여 사회과라는 교과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이 보고서는 중등 교육과정에 ‘사회과’라는 교과가 공식적으로 편성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2) NEA의 1916년 보고서는사회과(social studies)를 ‘인간사회의 조직과 발전 및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인간과 직접 관련된 교과’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현대교육의 주안점이 ‘사회적 효율성(social efficiency)’에 있으며, 모든 교과의 수업은 이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사회과위원회는 이 보고서에서 두 개의 주기로 구성된 6년의 중등 사회과 교육과정을 제안하였다.

① 1주기(junior cycle, 7〜9학년): 지리, 유럽사, 미국사, 공민

② 2주기(senior cycle, 10~12학년): 유럽사, 미국사, ‘민주주의의 제 문제(사회, 경제, 정치)

(3) 1916년 보고서의 ‘공민(Civics)’ 과목은 사회과위원회의 간사를 맡았던 Arthur W. Dunn이 1915년 발간한 ‘The Teaching of Communit Civics(공동체 공민의 교수)’의 내용을 이어받았다. 공민 과목은 주로 가정, 공동체, 교육, 정부와 대통령, 법원, 토지, 노동, 자본, 운송, 통신, 지역, 환경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었으며, 시민교육을 위한 핵심과목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4) 또한, 사회과위원회가 12학년용 과목으로 창안한 ‘민주주의의 제 문제(Problems of Democracy: POD)’는 여러 사회과학 학계의 요구를 수용하여 만들어 졌다. 교과서 구성을 살펴보면, 정치학•경제학•사회학의 세 분과 학문을 중심으로 역사 및 기타 학문 내용을 융합하여 사회적 이슈와 문제 중심의 교육과정을 구성하였다. 또한,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여러 학문적 지식을 활용하고 반성적 사고기능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POD과목은 교육과정 융합을 시도한 초기 움직임이며, 사회 문제를 중심으로 한 최초의 통합적 이슈중심 과목이라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고, 사회과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5) 1916년 보고서는 첫 페이지에 사회과의 본질적 목표가 훌륭한 시민성을 육성하는 것이며, 훌륭한 시민 (good citizen)이란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과 의무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즉 사회과가 추구하는 ‘사회적 효율성’이란 공동체의 복지나 공동체의 개선에 기여하려는 의무감이나 사회적 의식을 의미한다. 이 보고서에 나타난 사회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위에서 기술한 ‘공민(Civics)’ 과목과 ‘민주주의의 제 문제(POD)’ 과목이다. 이 두 과목이야말로 사회과라는 새로운 교과의 존재 의의를 드러내는 과목이며 민주시민 육성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과목임을 나타내고 있다.

(6) 이러한 1916년 사회과모형은 기존 역사중심의 전통적인 교육과정과 시민양성을 목표로 하는 진보적인 사회 과교육의 근대적 절충안의 형태로 제시된 것이었다. 1916년 사회과 모형은 최근의 사회 문제, 최근 역사와 학생들의 요구 및 흥미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전통적 교육과정과 차이를 보인다. 또한 10인 위원회와 7인 위원회가 개인의 지적 성장을 강조했다면, 1916년 사회과 모형은 사회적 효율성과 사회복지, 진보적인 역사 교육과 학생의 흥미, 필요를 강조하는 특징을 띠고 있다.

(7) 1921년 미국 사회과교육학회(National Council for the Social Studies: NCSS)가 조직되면서 새로운 교과로서 사회과의 정체성 모색과 학문적 발달의 토대가 되었다.

1학년 ‘가족’, 2학년 ‘이웃’, 3학년 ‘지역사회’, 456학년 ‘지리와 역사’, 78학년 ‘지리역사공민, 9학년 ‘공민’, 10학년 ‘세계사’, 11학년 ‘미국사’ 그리고 12학년에서 ‘민주주의의 제 문제’를 가르치도록 제안하는 ‘전미교육협회(NEA) 보고서’가 등장하였다.

사회적 효율성의 증진이라는 학교의 역할 속에서 좋은 시민을 양성한다.

사회과를 사회 조직과 발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간과 관련된 교과로 정의하고, 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제 문제’를 교수하게 함에 따라 사회과의 통합교과적 성격이 드러났다.

미국사회과교육협의회(NCSS)가 창설되어 시민성 교육을 위한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였다.

1921년

3. 1920~30년대 사회과의 발달

(1) 1920〜30년대는 사회과의 내용과 조직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시도되고, 사회과 수업 개설과 사회과에 대한 문헌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회과운동(The Social Sudies Movement)’ 시기였다. 신생교과인 사회과에 대해 많은 제안과 프로젝트가 쏟아졌고, 사회과의 정의와 접근법에 대한 통일된 입장을 찾기 어려웠다. 이 시기 사회과에 큰 영향을 미친 두 가지 흐름은 ①진보주의와 존 듀이(John Dewey)의 영향, ②대공황 이후의 사회적 격변기에 부상한 사회재건주의 입장이다.

(2) 당시 미국의 교육은 진보주의가 중심 사상이었고, 사회과는 그 핵심교과로 간주되었다. 존 듀이(John Dewey)에 의해서 체계화된 진보주의 교육은 아동의 외부에 미리 존재하는 지식을 아동에게 암기시키는 것에 반대하고, 교육은 아동의 필요와 흥미에 맞추어서 시행되고 아동의 성장을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듀이의 진보주의 철학은 사회과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학생들이 문제에 직면하여 참여할 수 있는 실제 상황에 대한 강조, 다양한 학교교과들의 연계와 톻합, 사고력을 학습의 중심에 두는 경향 등으로 나타났다.

(3) 이 시기 교육과정에서는통합적 접근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다. 교육과정의 조직에 대해서 다양한 입장들이 대두되었는데, 대표적인 접근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30년대는 융합(fusion)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즉, 역사, 지리, 공민을 융합된 형태로 조직하여 가르치는 것이 학생들이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융합의 한 형태로 사회과를 모든 교과의 중핵(core)에 두고 영어, 과학 등 다른 교과를 통합하는 방안이 실험되기도 했고, 나중에 이를 중핵교육과정(core curriculum)이라고 불렀다.

둘째, 사회과의 특정 과목을 중심에 놓고 다른 과목이나 사회과학들과의 상관관계를 제공하는 상관형(correlation) 접근이 시도되었다.

셋째, 문제중심(problem-centered) 접근으로, 사회문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영역의 내용을 가져와 하나의 과목을 구성함으로써 학생들의 사고력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려는 접근법이었다. 그러나 실제 학교 현장의 전반적인 경향은, 교과서와 주제(topics)를 중심으로 가르쳤던 비교적 ‘전통적인’ 학교와 문제해결적 접근을 취했던 ‘진보적인’ 학교로 크게 나뉘었다.

(4) 1929년의 대공황과 이후 정치, 경제적인 격변을 겪으면서 사회과에 나타난 또 하나의 흐름은 조지 카운츠(George S. Counts)를 중심으로 교육을 통한 사회변화와 새로운 사회 질서의 창조를 추구하는 ‘사회재건주의(social reconstructionism)’ 관점이었다.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비판도 받았으나, 재건주의 관점은 교육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사회과에서는 POD과목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사회문제(social problems)를 교육과정의 중심에 두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문제중심 사회과의 대표적 학자는 해롤드 러그(Harold O. Rugg)이다. 그는 교육을 통한 사회재건을 주장하면서 사회문제 중심의 사회과 교과서 시리즈를 제작하였고, 그의 교과서들은 1930년대 미국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Rugg의 교재는학습자의 흥미를 반영하는 실제적 사회문제를 핵심 내용으로 한다는 점, 연대기적 구성을 탈피하여 사회문제 혹은 쟁점을 중심으로 통합적 구성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1916년 보고서와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초기 사회과의 정신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사회에서 자본주의적인 성장이 지속되면서 그에 따른 여러 사회문제가 나타났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과의 필요성이 확산되었다. 특히, 초등학교에서는 사회과를 중심으로 하는 중핵 교육과정이 등장하였다.

사회과를 핵심으로 언어·수학·자연 등을 주변에 두는 것처럼, 융합 혹은 통합된 광역 교과를 핵심에 위치시키고 타 교과를 주변에 위치시키는 중핵 교육과정을 실현하고자 하는 활동이 활발하였다.

사회과 교육과정 구성에서 진보주의 교육사상이 주류를 이루었고, 대공황 등의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교육 운동과 통합교육과정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4. 1940〜50년대 보수주의

(1)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전시체제의 영향으로 교육계에도 보수주의의 움직임이 강화되었고, 이에 따라 사회과의 진보주의 실험은 1940년대에 이르러 주춤하게 되었다. 특히, Rugg의 교과서들은 지나치게 체제 비판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Rugg 자신이 정통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음에도 일부 기업가와 보수단체들은 그의 교재가 반자본주의적이라고 비난했고, 이러한 분위기는 40년대 중반에 이르러 Rugg의 교과서가 거의 사라지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일부 역사학자들은 학교에서 역사 수업시간이 충분치 않으면, 청소년들이 역사에 대해 무지하다는 글을 언론을 통해 발표하며, 역사 수업시간의 증대를 요구했다. 이 시기에는 전반적으로 애국적인 시민의 양성과 전통적인 역사교육이 강조되었다.

(2) 1950년대 들어서 미국의 학교들이 유럽, 특히 소련보다 열등하다는 비판을 받게 되고, 학교는 각교과에서 수월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곧 사회과가 사회문제 접근에서 분과 학문적 접근으로 회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의 내용으로는 개별 학문의 내용에, 교육방법으로는 탐구(inquiry)에 기초하여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며, 통합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저조하였다. 이것이 1950년대 후반 사회과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이며, 1960년대 신사회과 운동의 토대를 이루게 된다.

5. 1960〜70년대 초의 신사회과운동

(1) 신사회과운동의 배경

①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 이후 냉전시대의 시작과 함께 사회과는 사회문제 중심의 교육과정에서 학문중심적 교육과정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Sputnik)를 발사했는데, 우주개발에서 소련에 뒤진 미국은 이 사건을 ‘스푸트니크 충격’이라고 불렀다. 이후 이 사건은 미국이 소련과의 과학기술 경쟁에서 뒤처진 것이 교육문제 때문이라는 해석을 촉발하면서 광범위한 교육개혁을 시도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② 1959년 9월 매사추세츠주의 우즈호울 회의에서 미국학술원의 주체로 35명의 과학자, 교수, 교육자들이 모여 미국 초, 중등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10일간 토론을 하고, 결과보고서로 출판한 것이 브루너(J.Bruner)의 ‘교육의 과정’(The Process of Education)(1960)이다. 브루너의 이 보고서는 당시 개혁을 주도한 핵심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데, 모든 학문에는 구조(structure)가 있으며,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이러한 학문의 구조를 발견(discover)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갈수록 내용의 범위와 깊이가 심화하는 나선형 교육과정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영향을 받아 과학 및 수학 교육의 개혁이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사회과에서도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심리학 등 사회과학의 내용과 연구방법이 강화되었다. 이렇게 새롭게 등장한 사회과학 중심의 사회과를 ‘신사회과’, 이러한 운동을 ‘신사회과운동(New Social Studies Movement)’이라고 한다. 1960년대와 70년대초까지 연방정부와 민간 재단으로부터 막대한 예산 지원을 받으며, 많은 학습 자료가 개발되었다.

(2) 신사회과의 내용과 방법

① 사회과학 중심의 사회과 모형이 발달하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다. 무엇보다도 제2차 세계대전 후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등의 사회과학이나 행동과학이 발달한 것을 들 수 있다. 자연과학에서 사용되던 통계학적인 연구방법이 1940년대부터 사회현상을 연구하는 데에도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사회과학이 급속히 발달하였다. 특히, 1960년대 미국은 인종 갈등을 비롯한 많은 사회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이러한 문제들의 진단과 해결을 위해 사회과학의 지식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사회상황에서 사회과는 단편적인 지식의 이해나 암기보다는 문제해결력, 비판적 사고력, 의사결정력 등 고차적 사고력을 강조하게 되었고, 내용면에서는 인류의 생존과 직접 관계있는 문제들, 즉 전쟁의 예방, 평화, 환경오염, 소비자 교육, 마약중독, 그리고 과학의 발달과 그에 따른 문제점 등이 포함되었다.

② 사회과의 교수방법 측면에서는 발견학습, 탐구학습, 학제적(간학문적) 접근법 등이 강조되었다. 먼저, 학문의 구조는 교사가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가 발견적 방법으로 체득해야 한다는 것이 브루너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었다. 또한, 학생들이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하여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지식을 습득하는 탐구학습이 강조되었다. 학생들이 다루는 도시문제, 국가발전, 환경오염 등의 사회문제는 단일 학문분야의 지식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다양한 학문을 활용하는 학제적인 연구방법, 또는 다학문적 연구방법이 강조되었다.

③ 학문중심의 사회과 교육과정 개혁을 위한 많은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는데, 이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하버드대학교의 브루너 교수가 중심이 되어 개발한 사회과학 중심 교육과정인 [Man:A Course of Study](MACOS)- 직역하면 [인간: 교육요목]이 된다. ‘인간을 주제로 한 교육요목(교육과정)’, ‘인간에 대한 연구’, 또는 ‘인류에 대한 탐구’라는 의미가 있다.- 를 들 수 있다.

MACOS는 사회과학 전문가들이 모여 학생들이 발견적 학습을 통해 학문의 구조(주로 인류학)를 배울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설계한 것으로 문제해결을 위한 과학적 접근이 강조되었다. 1963년에 시작하여 완성되었던 MACOS는 초등학교 고학년용으로 개발되었고, 총 6개의 대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생물의 생애주기(What's in a Lifetime), ② 연어(Salmon), ③ 재갈매기(Herring Gulls), ④ 개코원숭이(Baboons), ⑤ 인디언 마을의 넷실리크(Netsilik) 에스키모족, ⑥ 해빙(Sea Ice) 위의 넷실리크 에스키모족. 이러한 MACOS를 관통하는 세 가지 질문은 ‘인간의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그러한 모습을 갖게 되었는가?’, ‘인간이 더 인간다워지는 방법은 무엇일까?’등이었고, 특히 마지막 두 단원에는 MACOS 개발팀이 상정했던 인간다움의 특성인 ‘도구 사용’, ‘사회 조직’, ‘오랜 유년기’, ‘설명 욕구’, 그리고 ‘언어’가 잘 나타나 있다.

(3) 신사회과 운동의 한계와 의의

① 사회과학자들이 중심이 된 프로젝트 개발 위주의 초기 신사회과에 대하여 점차 학부모, 교사들은 평등, 공정성, 사회문제에 대한 참여 등을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였다. 이와 동시에 3R 기초교육(읽기, 쓰기, 셈하기)의 강조와 연대기적 역사 지식이 강조되면서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신사회과는 쇠퇴기를 겪게 된다. 막대한 예산을 통한 많은 프로그램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신사회과운동은 실제 학교 교육과정을 개혁하는 데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주로 대학교수를 중심으로 한 사회과학 전문가집단이 개발에 참여했고, 현장교사들의 역할은 미미했다. 실제로 당시에 전문가 집단이 개발한 자료를 사용한 사회과 교사는 전체의 20%도 되지 않았다. 또한, 교사들은 신사회과 운동이 가져오는 변화에 부담을 느끼고 수용하기를 꺼렸으며, 수업자료가 어려워 학생들의 이해 수준을 벗어난 경우가 많았다.

②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신사회과운동은 이후 사회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우선 방대한 학습 자료가 개발됨으로써 이후 상업용 혹은 교사가 제작하는 다양한 교재개발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교수-학습 과정에서 학습자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탐구(inquiry)를 중요시함으로써 후에 학습자의 역할을 중시하는 구성주의적 교수이론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또한, 교수-학습에 있어서 매체의 활용을 권장했다는 점과 사회과 수업에서 가치교육을 강조했다는 점도 신사회과운동의 의의로 들 수 있다.

‘보다 새로운 사회과(the newer social studies)’ - 박상준

1960〜70년대 미국 사회는 커다란 혼란과 갈등에 휩싸이게 된다. 베트남 반전 시위, 케네디와 마틴 루터 킹의 암살, 흑백인종 갈등, 워터게이트 사건, 사회적 약자의 평등권 요구 운동, 빈부 격차 등으로 사회 갈등이 심화되었고, 공해와 환경문제, 에너지 위기, 가치관 혼란, 가족해체, 약물중독 등 사회 문제가 급증하였다.

이러한 사회 갈등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여 헌트와 메트칼프(M. Hunt & L. Metcalf)는 미국사회의 폐쇄된 영역(closed area) - 성, 인종, 도덕, 애국심 등 - 과 논쟁문제들을 중심으로 사회과 교육과정을 조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런 입장은 ‘사회비판으로서 사회과’로 나타났다.

다른 한편 복잡한 사회문제의 해결이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면서, 1960년 엥글(Engle)은 ‘의사결정: 사회과교육의 핵심’이란 논문에서 과학적 지식의 활용과 개인적 가치의 탐구를 포함한 의사결정이 사회과의 기본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엥글에 이어 뱅크스(J. A. Banks)는 1973년 ‘합리적 의사결정(rational decision - making)’이 사회과의 핵심적 목표라고 주장하면서, 사회과학적 지식의 탐구와 가치의 탐구를 결합한 의사결정 과정을 제시했다. 엥글과 달리, 뱅크스는 사회과의 핵심 목표로서 의사결정과 함께 그 결정에 따른 ‘지적인 사회적 행위(intelligent social action)’의 수행을 포함시켰다.

사회갈등과 사회문제가 심화되면서, 사회문제와 가치에 무관심한 사회과학적 지식 중심의 신사회과(new social studies)는 사회과교육자들에게 호소력을 잃게 되었다. 반면에 개인적·사회적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사고력 또는 ‘의사결정력의 교수’를 강조하는 사회과가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이런 사회과의 접근을 ‘보다 새로운 사회과(the newer social studies)’로 부른다.

기출표현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인공위성을 발사한 사건은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 결과 미국 사회에서는 대규모의 교육개혁이 시작되었다.

사회과는 지리·역사·공민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났다.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새롭게 등장한 사회과를 이전의 사회과와 구분하여 신사회과라고 한다.

사회과 교육에서도 수월성의 함양은 중요한 목표이다. 이를 위한 여러 프로젝트 중의 하나로 ‘인간에 관한 연구(MACOS)’를 개발하여 인류학의 학문 구조를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브루너는 [교육의 과정]에서 지식의 구조화를 주장하였다. 이러한 흐름이 사회과에서도 받아들여져 ‘지식의 구조’에 대한 이해와 적용이 사회과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사회과학적 지식과 탐구 방법이 훌륭한 시민 양성의 요건임을 강조하여 사회과학의 관점과 사고방법에 대한 학습이 요구되었다.

뱅크스는 사회 탐구와 가치 탐구에 의해 합리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을 강조하며 이러한 의사 결정 능력을 사회과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공공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참여, 사회과학적 탐구에 의한 지식과 가치탐구에 의한 가치 분석을 종합한 의사결정 학습모형이 강조되었다.

6. 신사회과 운동 이후 ~80년대의 사회과교육

(1)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80년대는 미국의 학교 문화와 사회 전반에 신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팽배한 시기였다. 사회과에서도 가치에 대한 토론이나 사회적 이슈 중심의 간학문적 접근이 비판을 받고 분과 중심의 교육이 강조되었다. 1970년대 후반 보수주의지들의 기초복귀운동(back-to-basics)에는 대중매체도 적극 가세했다. 이들은 교육의 질 향상, 수월성 강화, 교육의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 입학과 졸업요건의 강화 등을 주장했다.

공화당 레이건 정부의 국가교육수월성위원회가 1983년 발간한 「국가의 위기(A Nation at Risk)」라는 보고서는 미국이 상업, 산업, 과학, 기술 혁신에서 누려오던 세계 최고의 지위가 위협받고 있으며 미국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위기의 원인 중에 교육의 실패가 있다고 진단하고, 이 보고서는 고등학교 졸업요건 및 대학교 입학요건의 강화, 수준 높은 교육과정, 높은 교사기대 등을 주장했고 이후 전개되는 미국 교육개혁을 뒷받침했다.

(2) 사회과에서 일정한 방향성을 갖지 못하고 혼란을 겪고 있던 이 시기에 나타난 흐름은 ‘전통적 역사(traditional history)’의 강조였다. 신사회과운동이 사회과학을 중심으로 하고 사회적 이슈의 통합적 접근을 취한 것이 역사교육의 지위를 위협한다고 생각한 보수주의 역사학자들이 통합적 사회과를 집중적으로 비판했으며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하여 역사의 강화와 분과주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1980년대 중후반 사회과는 이슈 중심의 사회과가 쇠퇴하고 전통적 역사교육이 강화되었다.

(3)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나타난 중요한 교육적 담론의 하나는다문화교육(multicutural education)이다. 60년대 민권운동에서 태동한 다문화교육은 유색인종, 여성, 노동계층 등 사회적 소수자가 교육의 내용에서 배제되어온 문제점을 지적하며,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이들을 포함시킴으로써 학생들이 올바른 사회인식을 갖게 되고, 평등한 사회의 구현에도 이바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하여 보수주의 교육가들은 다문화교육이 차이와 갈등을 강조함으로써 미국사회의 분열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제기하였다.

7. 1990년대 이후의 사회과교육: 표준화

(1) 표준중심 개혁 운동

① 1990년대 이후 미국 사회과 교육과정의 지배적인 추세는 ‘표준화(standardization)’이다. [국가의 위기(A Nation at Risk)] 출간과 함께 촉발된 성취수준 향상, 학교 책무성 강화 등의 일련의 교육개혁운동은 교과별로 높은 수준의 ‘표준’을 제정하고 실행하는 표준중심 교육개혁(standard-based educational reform)으로 나타났다.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1989년 수학과 표준교육과정이 개발되었고, 1994년에는 미국의 전국역사과협의회, 지리교육학회, 경제교육학회, 공민교육센터, 미국심리학회 등에서도 각각 교육과정 표준을 제정하여 각 주의 교육과정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 사회과교육학회(NCSS)에서도 1994년 The Curriculum Standards for Social Studies라는 교육과정 표준서를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발표하였다. 여기서 제시된 사회과의 핵심적인 주제 스트랜드(strand) 10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 문화 ② 시간, 계속성, 변화 ③ 사람, 장소, 환경 ④ 개인의 발달과 정체성 ⑤ 개인, 집단, 제도 ⑥ 권력, 권위, 통치 ⑦ 생산, 분배, 소비 ⑧ 과학, 기술, 사회 ⑨ 세계 속의 시민 ⑩ 공민적 이상과 실천(NCSS, 1994)

② 이러한 교육과정 표준은 거의 모든 주에서 주 단위 사회과 표준을 제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각급 학교는 이러한 주 단위 표준에 따라 집필된 교과서를 사용한다. 또한 각 주에서 실시하는 고부담시험(high-stakes testing)이 이러한 표준에 따라 학업성취 정도를 평가함으로써 '표준'은 명실상부한 교육과정의 지침 역할을 하고 있다. (시험의 결과가 관련 당사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에서 ‘고부담 시험’이라고 한다. 이 시험의 결과는 학교별 예산의 차등 지원, 교장의 임면, 교사 승급 및 보수, 학생의 진급 및 졸업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③ 멀게는 1970년대 말부터, 그리고 1989년 수학과 교육과정 표준서의 발간과 함께 추진되어온 교육과정 표준화 움직임은 2002년 1 월 부시(George W. Bush)대통령이 ‘전원성취법(No Child Left Behind)’이라 불리는 초·중등교육법의 개정안에 서명함으로써 정점을 형성한다. 전원성취법은 그 주요 내용인 수학, 과학, 읽기뿐만 아니라 타 교과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사회과에도 교육과정 표준서에 따른 주 단위 교육과정의 마련과 이에 따른 평가의 시행이라는 추세를 강화했다.

④ 이러한 교육과정의 표준화, 고부담시험, 수월성 추구, 책무성 강화, 국제경쟁력 강화 등의 일련의 보수주의적 흐름이 대세를 형성하고 있지만, 미국 교육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또 하나의 전통인 풀뿌리 민주주의, 다양성, 다원주의 흐름도 존재하며, 표준화 추세와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또 하나의 전통에는 구성주의, 실제적 평가, 이슈중심의 접근,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 등이 포함된다.

학교 교육의 책무성 강화에 대한 요구를 반영하는 ‘교육과정 표준화’ 운동의 결과, ‘미국사회과교육학회(NCSS)’에서 핵심적인 10개의 스트랜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교육과정 표준안을 발표하였다.

스트랜드 중심의 내용 구성, 표준에 따른 학업 성취 평가 등 사회과 교육과정에서 ‘표준화’가 지배적인 추세가 되었다.

(2) 공통핵심기준과 C3 Framework

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높은 수준의 표준을 설정하고, 이를 모든 학생에게 이수하게 한다는 열망을 담은 표준화 운동은 오바마 정부에 들어서 2010년 수학, 영어의 공통핵심기준(Common Core State Standards: CCSS)이 발표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오바마 행정부도 출범 초기에는 NCLB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으며, 결국 국가 수준의 공통기준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주지사협의회와 주교육감협의회의 주도로 공통핵심기준 개발이 시작되었다.

② 먼저 이들은 대학 및 직업 준비도 기준을 만들고 이에 따라 K-12 학년별 기준을 작성하였다. 공통핵심 기준의 개발은 K-12 과정을 마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대학 및 직업에서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명료하게 규정하고자 하였다.

2010년 수학, 영어 공통핵심기준이 발표되자 45개주, 4개 자치령, DC 등이 가입함으로써 사실상 국가 수준의 내용 기준 구실을 하고 있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가 각 주의 공통핵심기준 채택을 연방 보조금 지원 및 NCLB 면책권 부여와 연동시켰기 때문이다. NCLB법에 따르면, 모든 주와 교육구(school district)는 그들이 애초 연방정부에 제출했던 목표치를 2014년까지 달성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거의 모든 지역에서 기준치 달성이 불가능했고, 이들은 공통핵심기준을 채택함으로써 면책권을 받고자 하였다.

③ 수학, 영어에서 시작한 이러한 공통핵심기준 움직임은 2013년 과학에 이어 사회과도 [College, Career, and Civic Life Framework for Social Studies State Standards](일명 C3 Framework)를 발표하면서 구체화하였다. C3 Framework의 작성은 NCSS의 주도로 14개의 내용학 관련 단체가 참여하였는데, 제목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대학 및 직업, 그리고 시민적 삶을 성공적으로 영위하는 데 필요한 자질을 구성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④ C3 Framework은 탐구를 강조하고 있는데, 탐구과정을 네 단계로 나누고 있다. 첫째, 문제제기와 탐구 계획. 둘째, 교과 개념 및 도구 적용. 여기에서 공민, 경제, 지리, 역사를 사회과의 주요 교과영역으로 제시하고 있다. 셋째, 자료 평가와 근거 제기. 넷째, 결론 전달 및 식견있는 행동. 그리고 각 단계마다 맨 끝에는 2010년에 발표된 언어영역 기준과의 연계점을 제시하여 사회과 시수확보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려 노력했다는 점이 특이할만하다. C3 Framework이 실제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⑤ 공통핵심기준 개발 움직임에 대한 평가에서도 결국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즉 공통핵심기준도 오래전에 시작된 표준화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높은 수준의 기준 또는 표준을 마련하고 이를 이수하게 하여 학업성취도를 향상하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입장과 다원화된 시대에 기준을 강조하는 것은 교육의 다양성을 저해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박

2.사회과 교육의 탄생과 발달 과정(원본)

1. 사회과 성립의 전야 -10인위원회와 7인 위원회의 보고서

(1) 사회과 교육이 필요했던 미국의 상황

① 19세기 말 20세기 초 당시 미국은 남북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 재건을 이룩한 시기로서, 유럽을 중심으로 많은 이민자가 몰려왔고, 산업화, 도시화의 진전과 함께 노동문제, 인종차별 등의 사회문를 안고 있던 시기였다. 따라서 급속히 산업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서부의 편입으로 통일된 미국의 발전을 위하여 애국심을 가진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이 요청되었다.

② 사회과가 공식 교과로 탄생하기 이전의 학교 시민교육은 역사를 중심으로 하여 지리, 공민, 정치경제, 도덕철학 및 종교교육 관련 과목들이 혼재한 형태였다. 단연 역사 과목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리스·로마 신화, 미국 혁명의 영웅들, 신대륙의 발견 등에 관한 내용이었고, 애국심과 도덕성 함양이 주요 목표였다. 체계적이지 않은 역사적 정보와 지식으로 교재가 구성되고, 주입식 암기 교육이 일반적인 수업 방법이었다.

(2) 1892년 전미교육협회(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 : NEA) 10인 위원회

따라서 이 시기의 시민 교육에 대한 요청은 단편적 역사지식 전달 위주의 전통적 교육에 대한 개혁 요구로 나타났다. 이러한 개혁요구에 부응하여 1892년 전미교육협회(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 : NEA)는 하버드대 총장 엘리엇을 중심으로 ‘10인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10인 위원회'에서는 체계적인 8년간의 역사 교육과정을 제시하고, 수업방법도 일방적 강의와 지나친 교과서 의존을 탈피하여 토의 • 토론을 실시하고, 시, 소설, 전기 등 문학작품을 함께 활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NEA의 ‘10인 위원회'가 제출한 보고서는 고등학교에 역사교과가 정착하는 데는 기여하였으나, 학교 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하지는 못한 한계를 가졌다.

미국교육협회 10인 위원회에서는 라틴어, 그리스어, 고대사 등과 함께 직업 생활이나 시민 교육을 포괄하는 교육과정을 제시하였다.

‘전미교육협회(NEA)의 10인 위원회’는 고문(古文), 이과(理科), 현대어, 영어의 기본 교육과정으로 정신적 훈련을 도모하고자 하였으며, 사회 인식 교과로서 역사교육을 중시하였다.

(3) 1896년 미국역사학회(American Historical Association : AHA) 7인 위원회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1896년 미국역사학회(American Historical Association : AHA)에서는 ‘7인 위원회’를 조직하였고, 이들은 전통적인 지식전달 중심의 역사교육을 벗어나 학생들에게 역사적 이해력, 역사적 사고력을 길러주는 과학적인 역사교육을 강조했다. 이 위원회는 더욱 구체적인 4단계 학교 교육 프로그램으로 ①고대사, ② 중세 및 근대 유럽사, ③ 영국사, ④ 미국사 및 시민정부로 구성된 4년간의 역사교육 프로그램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고대사에 대한 지나친 강조와 시민정부에 대한 관심의 부족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역사학회(AHA)의 7인 위원회에서는 고대사, 중세 및 근대사, 영국사, 미국사와 민주 정부(civil government)로 구성된 역사 교육을 주장하였다.

(4) 결국

10인 위원회와 7인 위원회에서 제안한 보고서들은 전통적인 역사중심의 교육과정에 치중함으로써 NEA가 추구한 시민교육의 이상에 미치지 못했고, 학교 현장에서는 여전히 지식전달 중심의 교육과정이 강조되었다. 즉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학생들의 필요, 흥미와 연계된 시민교육을 요구하는 개혁적 필요에 부응하지 못 했다. 그리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바람직한 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새로운 교과를 모색하게 되었다.

2. 최초의 사회과교육과정 모형 - 1916년 보고서

(1) 전미교육협회(NEA)는 중등교육개혁위원회(The Commission on the Reorganization of Secondary Education:CRSE)를 만들어 개혁을 모색하였다. CRSE의 활동과정에서 시민교육을 주된 목표로 하는 새로운 교과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등장한 것이 1912년 NEA ‘사회과위원회(The Committee on Social Studies)’의 설립이다. NEA 사회과 위원회는 1914년 ‘A Preliminary Statement’, 1915년 ‘The Teaching of Community Civics’ 그리고 1916년의 최종 보고서 ‘The Social Studies in Secondary Education’ 등의 보고서를 통하여 사회과라는 교과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이 보고서는 중등 교육과정에 ‘사회과’라는 교과가 공식적으로 편성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2) NEA의 1916년 보고서는사회과(social studies)를 ‘인간사회의 조직과 발전 및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인간과 직접 관련된 교과’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현대교육의 주안점이 ‘사회적 효율성(social efficiency)’에 있으며, 모든 교과의 수업은 이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사회과위원회는 이 보고서에서 두 개의 주기로 구성된 6년의 중등 사회과 교육과정을 제안하였다.

① 1주기(junior cycle, 7〜9학년): 지리, 유럽사, 미국사, 공민

② 2주기(senior cycle, 10~12학년): 유럽사, 미국사, ‘민주주의의 제 문제(사회, 경제, 정치)

(3) 1916년 보고서의 ‘공민(Civics)’ 과목은 사회과위원회의 간사를 맡았던 Arthur W. Dunn이 1915년 발간한 ‘The Teaching of Communit Civics(공동체 공민의 교수)’의 내용을 이어받았다. 공민 과목은 주로 가정, 공동체, 교육, 정부와 대통령, 법원, 토지, 노동, 자본, 운송, 통신, 지역, 환경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었으며, 시민교육을 위한 핵심과목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4) 또한, 사회과위원회가 12학년용 과목으로 창안한 ‘민주주의의 제 문제(Problems of Democracy: POD)’는 여러 사회과학 학계의 요구를 수용하여 만들어 졌다. 교과서 구성을 살펴보면, 정치학•경제학•사회학의 세 분과 학문을 중심으로 역사 및 기타 학문 내용을 융합하여 사회적 이슈와 문제 중심의 교육과정을 구성하였다. 또한,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여러 학문적 지식을 활용하고 반성적 사고기능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POD과목은 교육과정 융합을 시도한 초기 움직임이며, 사회 문제를 중심으로 한 최초의 통합적 이슈중심 과목이라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고, 사회과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5) 1916년 보고서는 첫 페이지에 사회과의 본질적 목표가 훌륭한 시민성을 육성하는 것이며, 훌륭한 시민 (good citizen)이란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과 의무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즉 사회과가 추구하는 ‘사회적 효율성’이란 공동체의 복지나 공동체의 개선에 기여하려는 의무감이나 사회적 의식을 의미한다. 이 보고서에 나타난 사회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위에서 기술한 ‘공민(Civics)’ 과목과 ‘민주주의의 제 문제(POD)’ 과목이다. 이 두 과목이야말로 사회과라는 새로운 교과의 존재 의의를 드러내는 과목이며 민주시민 육성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과목임을 나타내고 있다.

(6) 이러한 1916년 사회과모형은 기존 역사중심의 전통적인 교육과정과 시민양성을 목표로 하는 진보적인 사회 과교육의 근대적 절충안의 형태로 제시된 것이었다. 1916년 사회과 모형은 최근의 사회 문제, 최근 역사와 학생들의 요구 및 흥미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전통적 교육과정과 차이를 보인다. 또한 10인 위원회와 7인 위원회가 개인의 지적 성장을 강조했다면, 1916년 사회과 모형은 사회적 효율성과 사회복지, 진보적인 역사 교육과 학생의 흥미, 필요를 강조하는 특징을 띠고 있다.

(7) 1921년 미국 사회과교육학회(National Council for the Social Studies: NCSS)가 조직되면서 새로운 교과로서 사회과의 정체성 모색과 학문적 발달의 토대가 되었다.

1학년 ‘가족’, 2학년 ‘이웃’, 3학년 ‘지역사회’, 456학년 ‘지리와 역사’, 78학년 ‘지리역사공민, 9학년 ‘공민’, 10학년 ‘세계사’, 11학년 ‘미국사’ 그리고 12학년에서 ‘민주주의의 제 문제’를 가르치도록 제안하는 ‘전미교육협회(NEA) 보고서’가 등장하였다.

사회적 효율성의 증진이라는 학교의 역할 속에서 좋은 시민을 양성한다.

사회과를 사회 조직과 발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간과 관련된 교과로 정의하고, 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제 문제’를 교수하게 함에 따라 사회과의 통합교과적 성격이 드러났다.

미국사회과교육협의회(NCSS)가 창설되어 시민성 교육을 위한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였다.

1921년

3. 1920~30년대 사회과의 발달

(1) 1920〜30년대는 사회과의 내용과 조직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시도되고, 사회과 수업 개설과 사회과에 대한 문헌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회과운동(The Social Sudies Movement)’ 시기였다. 신생교과인 사회과에 대해 많은 제안과 프로젝트가 쏟아졌고, 사회과의 정의와 접근법에 대한 통일된 입장을 찾기 어려웠다. 이 시기 사회과에 큰 영향을 미친 두 가지 흐름은 ①진보주의와 존 듀이(John Dewey)의 영향, ②대공황 이후의 사회적 격변기에 부상한 사회재건주의 입장이다.

(2) 당시 미국의 교육은 진보주의가 중심 사상이었고, 사회과는 그 핵심교과로 간주되었다. 존 듀이(John Dewey)에 의해서 체계화된 진보주의 교육은 아동의 외부에 미리 존재하는 지식을 아동에게 암기시키는 것에 반대하고, 교육은 아동의 필요와 흥미에 맞추어서 시행되고 아동의 성장을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듀이의 진보주의 철학은 사회과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학생들이 문제에 직면하여 참여할 수 있는 실제 상황에 대한 강조, 다양한 학교교과들의 연계와 톻합, 사고력을 학습의 중심에 두는 경향 등으로 나타났다.

(3) 이 시기 교육과정에서는통합적 접근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다. 교육과정의 조직에 대해서 다양한 입장들이 대두되었는데, 대표적인 접근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30년대는 융합(fusion)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즉, 역사, 지리, 공민을 융합된 형태로 조직하여 가르치는 것이 학생들이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융합의 한 형태로 사회과를 모든 교과의 중핵(core)에 두고 영어, 과학 등 다른 교과를 통합하는 방안이 실험되기도 했고, 나중에 이를 중핵교육과정(core curriculum)이라고 불렀다.

둘째, 사회과의 특정 과목을 중심에 놓고 다른 과목이나 사회과학들과의 상관관계를 제공하는 상관형(correlation) 접근이 시도되었다.

셋째, 문제중심(problem-centered) 접근으로, 사회문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영역의 내용을 가져와 하나의 과목을 구성함으로써 학생들의 사고력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려는 접근법이었다. 그러나 실제 학교 현장의 전반적인 경향은, 교과서와 주제(topics)를 중심으로 가르쳤던 비교적 ‘전통적인’ 학교와 문제해결적 접근을 취했던 ‘진보적인’ 학교로 크게 나뉘었다.

(4) 1929년의 대공황과 이후 정치, 경제적인 격변을 겪으면서 사회과에 나타난 또 하나의 흐름은 조지 카운츠(George S. Counts)를 중심으로 교육을 통한 사회변화와 새로운 사회 질서의 창조를 추구하는 ‘사회재건주의(social reconstructionism)’ 관점이었다.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비판도 받았으나, 재건주의 관점은 교육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사회과에서는 POD과목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사회문제(social problems)를 교육과정의 중심에 두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문제중심 사회과의 대표적 학자는 해롤드 러그(Harold O. Rugg)이다. 그는 교육을 통한 사회재건을 주장하면서 사회문제 중심의 사회과 교과서 시리즈를 제작하였고, 그의 교과서들은 1930년대 미국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Rugg의 교재는학습자의 흥미를 반영하는 실제적 사회문제를 핵심 내용으로 한다는 점, 연대기적 구성을 탈피하여 사회문제 혹은 쟁점을 중심으로 통합적 구성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1916년 보고서와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초기 사회과의 정신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사회에서 자본주의적인 성장이 지속되면서 그에 따른 여러 사회문제가 나타났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과의 필요성이 확산되었다. 특히, 초등학교에서는 사회과를 중심으로 하는 중핵 교육과정이 등장하였다.

사회과를 핵심으로 언어·수학·자연 등을 주변에 두는 것처럼, 융합 혹은 통합된 광역 교과를 핵심에 위치시키고 타 교과를 주변에 위치시키는 중핵 교육과정을 실현하고자 하는 활동이 활발하였다.

사회과 교육과정 구성에서 진보주의 교육사상이 주류를 이루었고, 대공황 등의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교육 운동과 통합교육과정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4. 1940〜50년대 보수주의

(1)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전시체제의 영향으로 교육계에도 보수주의의 움직임이 강화되었고, 이에 따라 사회과의 진보주의 실험은 1940년대에 이르러 주춤하게 되었다. 특히, Rugg의 교과서들은 지나치게 체제 비판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Rugg 자신이 정통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음에도 일부 기업가와 보수단체들은 그의 교재가 반자본주의적이라고 비난했고, 이러한 분위기는 40년대 중반에 이르러 Rugg의 교과서가 거의 사라지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일부 역사학자들은 학교에서 역사 수업시간이 충분치 않으면, 청소년들이 역사에 대해 무지하다는 글을 언론을 통해 발표하며, 역사 수업시간의 증대를 요구했다. 이 시기에는 전반적으로 애국적인 시민의 양성과 전통적인 역사교육이 강조되었다.

(2) 1950년대 들어서 미국의 학교들이 유럽, 특히 소련보다 열등하다는 비판을 받게 되고, 학교는 각교과에서 수월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곧 사회과가 사회문제 접근에서 분과 학문적 접근으로 회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의 내용으로는 개별 학문의 내용에, 교육방법으로는 탐구(inquiry)에 기초하여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며, 통합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저조하였다. 이것이 1950년대 후반 사회과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이며, 1960년대 신사회과 운동의 토대를 이루게 된다.

5. 1960〜70년대 초의 신사회과운동

(1) 신사회과운동의 배경

①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 이후 냉전시대의 시작과 함께 사회과는 사회문제 중심의 교육과정에서 학문중심적 교육과정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Sputnik)를 발사했는데, 우주개발에서 소련에 뒤진 미국은 이 사건을 ‘스푸트니크 충격’이라고 불렀다. 이후 이 사건은 미국이 소련과의 과학기술 경쟁에서 뒤처진 것이 교육문제 때문이라는 해석을 촉발하면서 광범위한 교육개혁을 시도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② 1959년 9월 매사추세츠주의 우즈호울 회의에서 미국학술원의 주체로 35명의 과학자, 교수, 교육자들이 모여 미국 초, 중등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10일간 토론을 하고, 결과보고서로 출판한 것이 브루너(J.Bruner)의 ‘교육의 과정’(The Process of Education)(1960)이다. 브루너의 이 보고서는 당시 개혁을 주도한 핵심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데, 모든 학문에는 구조(structure)가 있으며,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이러한 학문의 구조를 발견(discover)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갈수록 내용의 범위와 깊이가 심화하는 나선형 교육과정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영향을 받아 과학 및 수학 교육의 개혁이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사회과에서도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심리학 등 사회과학의 내용과 연구방법이 강화되었다. 이렇게 새롭게 등장한 사회과학 중심의 사회과를 ‘신사회과’, 이러한 운동을 ‘신사회과운동(New Social Studies Movement)’이라고 한다. 1960년대와 70년대초까지 연방정부와 민간 재단으로부터 막대한 예산 지원을 받으며, 많은 학습 자료가 개발되었다.

(2) 신사회과의 내용과 방법

① 사회과학 중심의 사회과 모형이 발달하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다. 무엇보다도 제2차 세계대전 후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등의 사회과학이나 행동과학이 발달한 것을 들 수 있다. 자연과학에서 사용되던 통계학적인 연구방법이 1940년대부터 사회현상을 연구하는 데에도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사회과학이 급속히 발달하였다. 특히, 1960년대 미국은 인종 갈등을 비롯한 많은 사회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이러한 문제들의 진단과 해결을 위해 사회과학의 지식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사회상황에서 사회과는 단편적인 지식의 이해나 암기보다는 문제해결력, 비판적 사고력, 의사결정력 등 고차적 사고력을 강조하게 되었고, 내용면에서는 인류의 생존과 직접 관계있는 문제들, 즉 전쟁의 예방, 평화, 환경오염, 소비자 교육, 마약중독, 그리고 과학의 발달과 그에 따른 문제점 등이 포함되었다.

② 사회과의 교수방법 측면에서는 발견학습, 탐구학습, 학제적(간학문적) 접근법 등이 강조되었다. 먼저, 학문의 구조는 교사가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가 발견적 방법으로 체득해야 한다는 것이 브루너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었다. 또한, 학생들이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하여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지식을 습득하는 탐구학습이 강조되었다. 학생들이 다루는 도시문제, 국가발전, 환경오염 등의 사회문제는 단일 학문분야의 지식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다양한 학문을 활용하는 학제적인 연구방법, 또는 다학문적 연구방법이 강조되었다.

③ 학문중심의 사회과 교육과정 개혁을 위한 많은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는데, 이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하버드대학교의 브루너 교수가 중심이 되어 개발한 사회과학 중심 교육과정인 [Man:A Course of Study](MACOS)- 직역하면 [인간: 교육요목]이 된다. ‘인간을 주제로 한 교육요목(교육과정)’, ‘인간에 대한 연구’, 또는 ‘인류에 대한 탐구’라는 의미가 있다.- 를 들 수 있다.

MACOS는 사회과학 전문가들이 모여 학생들이 발견적 학습을 통해 학문의 구조(주로 인류학)를 배울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설계한 것으로 문제해결을 위한 과학적 접근이 강조되었다. 1963년에 시작하여 완성되었던 MACOS는 초등학교 고학년용으로 개발되었고, 총 6개의 대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생물의 생애주기(What's in a Lifetime), ② 연어(Salmon), ③ 재갈매기(Herring Gulls), ④ 개코원숭이(Baboons), ⑤ 인디언 마을의 넷실리크(Netsilik) 에스키모족, ⑥ 해빙(Sea Ice) 위의 넷실리크 에스키모족. 이러한 MACOS를 관통하는 세 가지 질문은 ‘인간의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그러한 모습을 갖게 되었는가?’, ‘인간이 더 인간다워지는 방법은 무엇일까?’등이었고, 특히 마지막 두 단원에는 MACOS 개발팀이 상정했던 인간다움의 특성인 ‘도구 사용’, ‘사회 조직’, ‘오랜 유년기’, ‘설명 욕구’, 그리고 ‘언어’가 잘 나타나 있다.

(3) 신사회과 운동의 한계와 의의

① 사회과학자들이 중심이 된 프로젝트 개발 위주의 초기 신사회과에 대하여 점차 학부모, 교사들은 평등, 공정성, 사회문제에 대한 참여 등을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였다. 이와 동시에 3R 기초교육(읽기, 쓰기, 셈하기)의 강조와 연대기적 역사 지식이 강조되면서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신사회과는 쇠퇴기를 겪게 된다. 막대한 예산을 통한 많은 프로그램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신사회과운동은 실제 학교 교육과정을 개혁하는 데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주로 대학교수를 중심으로 한 사회과학 전문가집단이 개발에 참여했고, 현장교사들의 역할은 미미했다. 실제로 당시에 전문가 집단이 개발한 자료를 사용한 사회과 교사는 전체의 20%도 되지 않았다. 또한, 교사들은 신사회과 운동이 가져오는 변화에 부담을 느끼고 수용하기를 꺼렸으며, 수업자료가 어려워 학생들의 이해 수준을 벗어난 경우가 많았다.

②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신사회과운동은 이후 사회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우선 방대한 학습 자료가 개발됨으로써 이후 상업용 혹은 교사가 제작하는 다양한 교재개발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교수-학습 과정에서 학습자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탐구(inquiry)를 중요시함으로써 후에 학습자의 역할을 중시하는 구성주의적 교수이론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또한, 교수-학습에 있어서 매체의 활용을 권장했다는 점과 사회과 수업에서 가치교육을 강조했다는 점도 신사회과운동의 의의로 들 수 있다.

‘보다 새로운 사회과(the newer social studies)’ - 박상준

1960〜70년대 미국 사회는 커다란 혼란과 갈등에 휩싸이게 된다. 베트남 반전 시위, 케네디와 마틴 루터 킹의 암살, 흑백인종 갈등, 워터게이트 사건, 사회적 약자의 평등권 요구 운동, 빈부 격차 등으로 사회 갈등이 심화되었고, 공해와 환경문제, 에너지 위기, 가치관 혼란, 가족해체, 약물중독 등 사회 문제가 급증하였다.

이러한 사회 갈등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여 헌트와 메트칼프(M. Hunt & L. Metcalf)는 미국사회의 폐쇄된 영역(closed area) - 성, 인종, 도덕, 애국심 등 - 과 논쟁문제들을 중심으로 사회과 교육과정을 조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런 입장은 ‘사회비판으로서 사회과’로 나타났다.

다른 한편 복잡한 사회문제의 해결이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면서, 1960년 엥글(Engle)은 ‘의사결정: 사회과교육의 핵심’이란 논문에서 과학적 지식의 활용과 개인적 가치의 탐구를 포함한 의사결정이 사회과의 기본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엥글에 이어 뱅크스(J. A. Banks)는 1973년 ‘합리적 의사결정(rational decision - making)’이 사회과의 핵심적 목표라고 주장하면서, 사회과학적 지식의 탐구와 가치의 탐구를 결합한 의사결정 과정을 제시했다. 엥글과 달리, 뱅크스는 사회과의 핵심 목표로서 의사결정과 함께 그 결정에 따른 ‘지적인 사회적 행위(intelligent social action)’의 수행을 포함시켰다.

사회갈등과 사회문제가 심화되면서, 사회문제와 가치에 무관심한 사회과학적 지식 중심의 신사회과(new social studies)는 사회과교육자들에게 호소력을 잃게 되었다. 반면에 개인적·사회적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사고력 또는 ‘의사결정력의 교수’를 강조하는 사회과가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이런 사회과의 접근을 ‘보다 새로운 사회과(the newer social studies)’로 부른다.

기출표현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인공위성을 발사한 사건은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 결과 미국 사회에서는 대규모의 교육개혁이 시작되었다.

사회과는 지리·역사·공민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났다.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새롭게 등장한 사회과를 이전의 사회과와 구분하여 신사회과라고 한다.

사회과 교육에서도 수월성의 함양은 중요한 목표이다. 이를 위한 여러 프로젝트 중의 하나로 ‘인간에 관한 연구(MACOS)’를 개발하여 인류학의 학문 구조를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브루너는 [교육의 과정]에서 지식의 구조화를 주장하였다. 이러한 흐름이 사회과에서도 받아들여져 ‘지식의 구조’에 대한 이해와 적용이 사회과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사회과학적 지식과 탐구 방법이 훌륭한 시민 양성의 요건임을 강조하여 사회과학의 관점과 사고방법에 대한 학습이 요구되었다.

뱅크스는 사회 탐구와 가치 탐구에 의해 합리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을 강조하며 이러한 의사 결정 능력을 사회과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공공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참여, 사회과학적 탐구에 의한 지식과 가치탐구에 의한 가치 분석을 종합한 의사결정 학습모형이 강조되었다.

6. 신사회과 운동 이후 ~80년대의 사회과교육

(1)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80년대는 미국의 학교 문화와 사회 전반에 신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팽배한 시기였다. 사회과에서도 가치에 대한 토론이나 사회적 이슈 중심의 간학문적 접근이 비판을 받고 분과 중심의 교육이 강조되었다. 1970년대 후반 보수주의지들의 기초복귀운동(back-to-basics)에는 대중매체도 적극 가세했다. 이들은 교육의 질 향상, 수월성 강화, 교육의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 입학과 졸업요건의 강화 등을 주장했다.

공화당 레이건 정부의 국가교육수월성위원회가 1983년 발간한 「국가의 위기(A Nation at Risk)」라는 보고서는 미국이 상업, 산업, 과학, 기술 혁신에서 누려오던 세계 최고의 지위가 위협받고 있으며 미국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위기의 원인 중에 교육의 실패가 있다고 진단하고, 이 보고서는 고등학교 졸업요건 및 대학교 입학요건의 강화, 수준 높은 교육과정, 높은 교사기대 등을 주장했고 이후 전개되는 미국 교육개혁을 뒷받침했다.

(2) 사회과에서 일정한 방향성을 갖지 못하고 혼란을 겪고 있던 이 시기에 나타난 흐름은 ‘전통적 역사(traditional history)’의 강조였다. 신사회과운동이 사회과학을 중심으로 하고 사회적 이슈의 통합적 접근을 취한 것이 역사교육의 지위를 위협한다고 생각한 보수주의 역사학자들이 통합적 사회과를 집중적으로 비판했으며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하여 역사의 강화와 분과주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1980년대 중후반 사회과는 이슈 중심의 사회과가 쇠퇴하고 전통적 역사교육이 강화되었다.

(3)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나타난 중요한 교육적 담론의 하나는다문화교육(multicutural education)이다. 60년대 민권운동에서 태동한 다문화교육은 유색인종, 여성, 노동계층 등 사회적 소수자가 교육의 내용에서 배제되어온 문제점을 지적하며,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이들을 포함시킴으로써 학생들이 올바른 사회인식을 갖게 되고, 평등한 사회의 구현에도 이바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하여 보수주의 교육가들은 다문화교육이 차이와 갈등을 강조함으로써 미국사회의 분열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제기하였다.

7. 1990년대 이후의 사회과교육: 표준화

(1) 표준중심 개혁 운동

① 1990년대 이후 미국 사회과 교육과정의 지배적인 추세는 ‘표준화(standardization)’이다. [국가의 위기(A Nation at Risk)] 출간과 함께 촉발된 성취수준 향상, 학교 책무성 강화 등의 일련의 교육개혁운동은 교과별로 높은 수준의 ‘표준’을 제정하고 실행하는 표준중심 교육개혁(standard-based educational reform)으로 나타났다.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1989년 수학과 표준교육과정이 개발되었고, 1994년에는 미국의 전국역사과협의회, 지리교육학회, 경제교육학회, 공민교육센터, 미국심리학회 등에서도 각각 교육과정 표준을 제정하여 각 주의 교육과정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 사회과교육학회(NCSS)에서도 1994년 The Curriculum Standards for Social Studies라는 교육과정 표준서를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발표하였다. 여기서 제시된 사회과의 핵심적인 주제 스트랜드(strand) 10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 문화 ② 시간, 계속성, 변화 ③ 사람, 장소, 환경 ④ 개인의 발달과 정체성 ⑤ 개인, 집단, 제도 ⑥ 권력, 권위, 통치 ⑦ 생산, 분배, 소비 ⑧ 과학, 기술, 사회 ⑨ 세계 속의 시민 ⑩ 공민적 이상과 실천(NCSS, 1994)

② 이러한 교육과정 표준은 거의 모든 주에서 주 단위 사회과 표준을 제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각급 학교는 이러한 주 단위 표준에 따라 집필된 교과서를 사용한다. 또한 각 주에서 실시하는 고부담시험(high-stakes testing)이 이러한 표준에 따라 학업성취 정도를 평가함으로써 '표준'은 명실상부한 교육과정의 지침 역할을 하고 있다. (시험의 결과가 관련 당사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에서 ‘고부담 시험’이라고 한다. 이 시험의 결과는 학교별 예산의 차등 지원, 교장의 임면, 교사 승급 및 보수, 학생의 진급 및 졸업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③ 멀게는 1970년대 말부터, 그리고 1989년 수학과 교육과정 표준서의 발간과 함께 추진되어온 교육과정 표준화 움직임은 2002년 1 월 부시(George W. Bush)대통령이 ‘전원성취법(No Child Left Behind)’이라 불리는 초·중등교육법의 개정안에 서명함으로써 정점을 형성한다. 전원성취법은 그 주요 내용인 수학, 과학, 읽기뿐만 아니라 타 교과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사회과에도 교육과정 표준서에 따른 주 단위 교육과정의 마련과 이에 따른 평가의 시행이라는 추세를 강화했다.

④ 이러한 교육과정의 표준화, 고부담시험, 수월성 추구, 책무성 강화, 국제경쟁력 강화 등의 일련의 보수주의적 흐름이 대세를 형성하고 있지만, 미국 교육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또 하나의 전통인 풀뿌리 민주주의, 다양성, 다원주의 흐름도 존재하며, 표준화 추세와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또 하나의 전통에는 구성주의, 실제적 평가, 이슈중심의 접근,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 등이 포함된다.

학교 교육의 책무성 강화에 대한 요구를 반영하는 ‘교육과정 표준화’ 운동의 결과, ‘미국사회과교육학회(NCSS)’에서 핵심적인 10개의 스트랜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교육과정 표준안을 발표하였다.

스트랜드 중심의 내용 구성, 표준에 따른 학업 성취 평가 등 사회과 교육과정에서 ‘표준화’가 지배적인 추세가 되었다.

(2) 공통핵심기준과 C3 Framework

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높은 수준의 표준을 설정하고, 이를 모든 학생에게 이수하게 한다는 열망을 담은 표준화 운동은 오바마 정부에 들어서 2010년 수학, 영어의 공통핵심기준(Common Core State Standards: CCSS)이 발표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오바마 행정부도 출범 초기에는 NCLB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으며, 결국 국가 수준의 공통기준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주지사협의회와 주교육감협의회의 주도로 공통핵심기준 개발이 시작되었다.

② 먼저 이들은 대학 및 직업 준비도 기준을 만들고 이에 따라 K-12 학년별 기준을 작성하였다. 공통핵심 기준의 개발은 K-12 과정을 마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대학 및 직업에서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명료하게 규정하고자 하였다.

2010년 수학, 영어 공통핵심기준이 발표되자 45개주, 4개 자치령, DC 등이 가입함으로써 사실상 국가 수준의 내용 기준 구실을 하고 있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가 각 주의 공통핵심기준 채택을 연방 보조금 지원 및 NCLB 면책권 부여와 연동시켰기 때문이다. NCLB법에 따르면, 모든 주와 교육구(school district)는 그들이 애초 연방정부에 제출했던 목표치를 2014년까지 달성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거의 모든 지역에서 기준치 달성이 불가능했고, 이들은 공통핵심기준을 채택함으로써 면책권을 받고자 하였다.

③ 수학, 영어에서 시작한 이러한 공통핵심기준 움직임은 2013년 과학에 이어 사회과도 [College, Career, and Civic Life Framework for Social Studies State Standards](일명 C3 Framework)를 발표하면서 구체화하였다. C3 Framework의 작성은 NCSS의 주도로 14개의 내용학 관련 단체가 참여하였는데, 제목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대학 및 직업, 그리고 시민적 삶을 성공적으로 영위하는 데 필요한 자질을 구성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④ C3 Framework은 탐구를 강조하고 있는데, 탐구과정을 네 단계로 나누고 있다. 첫째, 문제제기와 탐구 계획. 둘째, 교과 개념 및 도구 적용. 여기에서 공민, 경제, 지리, 역사를 사회과의 주요 교과영역으로 제시하고 있다. 셋째, 자료 평가와 근거 제기. 넷째, 결론 전달 및 식견있는 행동. 그리고 각 단계마다 맨 끝에는 2010년에 발표된 언어영역 기준과의 연계점을 제시하여 사회과 시수확보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려 노력했다는 점이 특이할만하다. C3 Framework이 실제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⑤ 공통핵심기준 개발 움직임에 대한 평가에서도 결국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즉 공통핵심기준도 오래전에 시작된 표준화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높은 수준의 기준 또는 표준을 마련하고 이를 이수하게 하여 학업성취도를 향상하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입장과 다원화된 시대에 기준을 강조하는 것은 교육의 다양성을 저해할 것이라는 입장이다.